목차
- 그릿, 그게 뭐에요?
- 경쟁 사회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
- 그릿, 나를 깨우는 시간
- 그릿, 나를 특별하게 하는 것
Editor 정탄 선생님&제자 Career (현) 제이티스쿨 대표
1. 그릿, 그게 뭐에요?
처음에 전 스스로를 조금 삐뚤빼뚤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릿”이라는 존재를 따로 가지지 않은 아이였다고 내 마음속의 삐뚤한 자아가 속삭였습니다.
- 그릿(grit): 목표한 것을 열망하고 해내는 열정과 위기의 상황에도 목표 달성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끈기.
몇 날 며칠이고 생각해보고 무언가를 닥치는 대로 노려보아도 그 아이는 쉽게 생기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해 보아도 그러한 그릿이 생기는지 잘 모르겠었고, 정말 그 그릿이라는 것이 습기 찬 연기인 듯 나를 스쳐가면 어떨까 두려웠습니다.
무언가를 향한 의미 있는 열정과 의지를 가지는 것이 그릿이라고 말한다면, 사실 전 그러한 “그릿”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바보 같은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그렇다 생각했어요. 내 언어 영역으로는 표현이 안되는, 그런 케이스였던 나는 나조차도 당황케 만든 “나라는 당당한 존재” 였습니다.
그릿이라는 것을 딱히 가지지 않은 삶은 지극히 평범했습니다.
그러한 틀에 박힌 삶을 그리 즐겁게 추구하지 않는 나의 날뛰는 자아를 빼면.
아직 인생의 티끌 만큼도 오지 못했다고 생각한 저와는 다르게, 다른 아이들은 공부에 열망을 가지고 열심히 하며 입시 전형을 준비하고 있는 빠른 사람들이었습니다.
2. 경쟁 사회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
엄마는 자주 제게 “거북이” 또는 “굼벵이”, “느려터진 다람쥐”로 부르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그냥 느린 줄 알았어요.
난 그냥 하는 행동이 느린 것인가, 천사가 첫날의 약속처럼 나에게 그런 특징을 남겼나 보다 하며 넘어갔습니다.
6학년 때는 그렇게 대수롭게 넘겼던 그 문제가 1년이 지나자마자 제게 누구보다도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로 다시 대두 되는 이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실 공부를 봐도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못했고, 남들이 그렇게 바라던 성공이라는 부와 돈, 권력에도 그닥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나와 다르게 남들은 벌써 진로를 이야기하고 자신이 살아나갈 별빛들이 반짝거리는 미래를 생각하는 듯 보였죠.
전 정말 “느려터진 굼벵이, 다람쥐, 거북이”였을까요?
오늘도 초라한 모습으로 알람을 울리는 휴대폰의 알림을 간신히 끄며 생각해보았습니다.
1년간 ‘난 느려터진 아이’라는 자신만의 꼬리표를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아무것에도 특정한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냥 바보같이 해맑았던 아이였던 전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직도 좋은 아이입니다.
성공을 위한 가치 따윈 저리 가라이고, 오로지 현재를 살아가는 것에 즐거웠던 탓이라 남들에게 배제되곤 했죠.
3. 그릿, 나를 깨우는 시간
미래의 포물선을 그리는 아이들에게는 이런 것이 익숙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자 입시 전형과 틀에 박힌 내신 대비는 제게 숨 갈라지듯 힘든 고통을 선사했습니다. 자소서를 쓰는 것 조차 나를 가두는 것 같고 규격화 시키는 것 같다며 힘들어 했던 제가 한 번은 엄마 아빠의 진정한 감정, “널 이해할 수 없다”라는 말을 듣고 내가 진짜로 “삐뚤빼뚤한 아이”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전 그저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아니, 평범한 아이여야 했는데, 그저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서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샌가 조금 어색하게 “특별한 아이”로 자리 잡아 있었어요.
생각이 많아져서 길게 쓰게 된 오늘의 글은 어두운 밤하늘 밑에서 계속 생각해 오던 것을 토해내는 시간이라 좋았습니다.
어느 순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질까봐 무서웠습니다.
그냥 원래 성격이 잘못된 것인지, 생각하는 방식이 이상한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성공의 유연한 미래를 상상해보며 괜한 짧은 공상에 잠깐 빠지곤 했어요.
왠지 제겐 꿈처럼 아득해 보이는 “성공”이라는 키워드는 생각보다 주변의 많은 곳에서 보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그릿이라는 감정을 실천한 것인가 싶은 생각에 허무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내 모든 순간이 잘못 끼워진 도어락 건전지 같이 어떠한 결함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가, 계속 나 자신을 탓하게 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남들이 열망하고, 간절하게 원하는 성공을 하기 위해 필요한 “그릿”을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한 리스크는 관계적으로 매우 컸어요.
열망하진 않으나, 그저 좋아하고, 편안할 뿐인데, 그걸 하는 것이 즐거울 뿐인데, 우리 사회는 그보다 더한 것들을 원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마치 자신에게서 뿜어지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을 원하는 듯 했습니다.
4. 그릿, 나를 특별하게 하는 것
전 어딘지 모를 강물을 흘러가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추구하는 것이 “그릿”은 아니기에, 성공이나 그런 것에 대한 열망이 없다는 것이 조금 그랬던 제 감정도 지금도 이해가 갑니다.
지금은 제가 정말로 느려 터진, 다른 아이들의 진도도 따라가지 못하는 그런 사람으로, 모든 것에 관심을 끄고 현실에서 벗어나 혼자 공상을 하길 좋아하는 이상주의자로 보일 수 있지만, “그릿”이라는 모습은 책에서나 보이는 그런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그릿을 딱히 가지고 있지 않아 이런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이러한 특별한 모습도 그릿의 한 모습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에 대한 의지로 많은 부와 명예를 얻었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난 그러한 부와 열망에 별로 관심이 없는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인간”이었고, 혼자 그냥 걸어가면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공상 많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나 자신도 내가 삐뚤빼뚤한 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견디지 못하는 자유로운 내가 성공을 하기란 조금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자유로운 인격의 모습도 하나의 그릿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성공”이라는 그릿이라는 것만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으니까.
“하나의 부조리라는 틀을 깨는 것”도 그릿이 되지 않을까요?
“이상한 애”와 “특별한 애”는 다른 것 처럼, 이미 세상에 익숙한 사람은 이러한 행동을 하는 제가 이상할 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제 스스로 정의한” 그릿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