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유전자조작 과 인공수정 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할까?
- 벤담과 하버마스의 관점에서 살펴본 유전자조작 , 인공수정
- 유전자조작 과 인공수정 을 둘러싼 논란과 의견
- 글을 마무리하며
Editor 정탄 선생님의 제자 류호림 Career (현) 제이티스쿨 대표
세상엔 예쁜 사람도 너무 많고, 재능 있는 사람들도 너무 많고, 매력이 넘치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핸드폰에서 SNS를 켜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위아래로 넘길 때마다 모두 잘난 사람들만 보인다.
핸드폰을 놓고선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이 조금만 더 작았더라면, 다리가 조금 더 길었다면, 두껍고 시원한 쌍커풀이 있었다면, 콧대가 더 높았더라면, 하고 한숨을 쉬곤 한다.
그렇지만 나의 부모님 두 분 다 특별한 질병이 없으시고, 건강하시다.
만약 내가 후원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너무나도 비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전자조작 과 인공수정 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할까?
‘인공 수정’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자연스러운 출산 과정으로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닌,
그 아이의 지능과, 외모와, 신체 능력처럼 완벽한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바로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인데,
불완전을 포함하고 있는 자연스런 출산이 아닌,
내가 만들고 싶은 완벽한 아이, 즉 맞춤형 아이를 창조하는 것이다.
즉, 작은 얼굴과 긴 다리, 높은 아이큐와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진 건강하고 우월한 아이를 사전에 미리 설계해놓고 설계한 그 상태로 출산하는 것이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공백의 공간에 프로그래밍을 하고, 3D프린터에 입력하면 정확하게 프로그래밍 한대로 출력되는 상품같아
아직까지는 이질적이고 거부감드는 기술이긴 하지만,
만약 모든 아이가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우월한 외모와 건강한 신체를 가진 채 태어난다면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까?
아주 조그마한 아이들의 사회, 학교에만 가도 어린 아이들은 벌써 예쁜 아이와 못생긴 아이로 서로를 구분한다.
예쁜 아이들은 이성친구들에게 손편지도 받고, 모두가 그들에게 호감을 표하는 반면,
못생긴 아이들은 놀림을 받거나, 학교폭력을 당한 것을 많이 봐 왔다.
도대체 못생긴 아이들은 어떤 나쁜 짓을 했길래 그런 상처와 차별을 받는 것이고,
예쁜 아이들은 얼마나 선하길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일까?
사실 예쁘건 못생기건 어린 아이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건강하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마찬가지이고, 키가 작거나 큰 아이들 모두 마찬가지이다.

벤담과 하버마스의 관점에서 살펴본 유전자조작 , 인공수정
이렇게 출생과 우생학에 관한 논의는 벤담의 입장과 하버마스의 입장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공리주의를 주장한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따라서 이익을 기준으로 사회의 제도나 문화, 그리고 그 운영방식을 판단하는 반면,
하버마스는 부모님이 직접적으로 개입한 결과물, 아이는 인간이라는 생명체로써 존엄성을 잃게 된다고 주장한다.
먼저 벤담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사회적으로 우월한 유전자만을 남겨놓는 것은 이익이 된다는 것이 확고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요즘 저출산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이유는
자신과 자신의 애인의 불편한 유전자가 아이에게 전달된다면
아이와 부모 모두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될까봐 하는 불안감이 가장 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생학을 통해 저출산 문제도 일부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하고,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나 불우한 가정의 아이들의 생활비가 대중들의 세금에 포함될 일도 없다.
따라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모두의 이익을 주장한 공리주의에 알맞은 발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하버마스의 입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자.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부모님에게 과잉보호를 받아가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면, 하버마스의 말이 많이 와닿을 것이다.
그는 우생학을 통한 인간 개조는 내가 나를 개조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나를 개조한 것이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탄생한 배아는 그저 예정된 인간, 부모의 자식이 아닌 상품, 애완동물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엄마의 소유물인 입장에서, 자신의 자아와 외모, 신체를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고, 원치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핸드폰 어플 설정에 들어가서 여러 버튼들을 클릭하거나 일부 기능을 없애버리는 것처럼,
부모님이 설정해둔 유전자로 살아간다면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이고,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할 틈없이
부모님의 꿈이 실현되는 듯한 아바타의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유전자조작 과 인공수정 을
둘러싼 논란과 의견
배아는 부모의 소유물이라 할 수 있을까?
또는 존엄성과 자유, 인권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인격체일까?
생명윤리법에 따르면 배아는 난자가 수정된 때부터 발생학적으로 모든 기관이 형성되는 시기까지의 분열된 세포들의 집단을 말한다고 한다.
이에 관해 실제 재판 사례에서는 인간 생명의 연속선상에 있는 동일한 생명체여서 인간과 같이 헌법이 보호하는 생명권에 주체라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배아를 인간 생명체를 본다면 잔여 배아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냐는 현실적인 문제도 생긴다는 반대 의견이 제시되었다.
만약 배아가 인격체가 아니라면,
어느 기점부터 인간이 되고 인격체가 되는 것일까?
많은 이들은 출생을 기준으로 한 인간의 인격체가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아직 출생하지 않은 배아들에게 유전자 가위, 인공 수정 등 출생한 인간들의 입김을 불어주는 것이 올바른 행위일까?
유전자조작 과 인공수정 은
인간사회를 이롭게 하는가?
나는 인공수정이 인간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원시 시대에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시기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동굴에서 거대한 동물들을 사냥하고 불을 피워 생활하던 구식 생활의 과정을 거쳐, 최첨단 의료 기술들과 미래 산업을 개발하는 기발한 생명체가 되었다.
이로써 인간의 수명은 연장되었으며, 사냥을 하고 짐승들을 견제할 시간에 더 놀라운 기술과 혁신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인공수정은 어쩌면 우리에게 또다른 계단이 되어줄 지도 모른다.
100세 시대라 할 만큼 인간의 수명은 늘었고, 인공수정이라는 혁신이 도입된다면 인간은 더욱더 건강해지고 우월한 외모와 뛰어난 신체적 능력을 선사받게 될 것이다.
아직 출생하지 않은 배아가 인공수정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는 반대 의견이 제시되지만,
배아의 자아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는 생성 조차 되지 못한 상황에서
아이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인공수정으로 유전자를 걸러내는 것은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아이도 자신이 못생긴 외모와, 장애, 허약함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니까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인공수정은 상류층과 중산층, 저소득층의 입장에서 상류층은 더욱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게 되는 반면에,
저소득층 입장에선 인공수정이 부담이 될 수 있어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우월함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결정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현재 인류의 입장에서도 상류층이 받는 의료 기술과 저소득층의 의료 기술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요즘은 청소년 혹은 노약자를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 무료 예방접종의 복지가 운영되고 있을 정도로 의료 기술은 보편화 되었다.
인공수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에는 가격이 비싸고, 상류층 중 몇몇만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기술의 중요성과 장점이 널리 알려지면서, 한명 한명씩 더 이를 시도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인공수정을 이용할수록 단가는 떨어지니 결국은 인공수정이 우리가 맞는 독감 예방접종처럼 보편화될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인간은 성장하고, 발전한다.
땅에서 주운 돌덩이를 갈아 무기를 만들어내던, 동굴 속 가죽을 걸친 인간은,
어느새 거대한 고층 건물의 한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자신의 의견을 타이핑하는, 몸에 이상이 있을 때마다 큰 부담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생각의 동물이 되었다.
인간은 발전할 때마다 인생의 불공평함과 정당성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고, 이로써 또다른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며 인간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본 글은 전직 14년차 초등학교 교사였던 정탄 선생님의
초등 고학년 ~ 중학생 대상 글쓰기온라인수업 에서
선생님의 제자가 작성한 원글에 소제목을 붙여서 가볍게 편집하였습니다.